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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시선] 고통은 바퀴벌레보다 참을성이 없다

홀로 죽은 이의 집은 누가 치워줄까? 특수청소서비스를 하는 '하드웍스'의 대표이자 책 "죽은 자의 집청소"의 저자 김완 작가님은 일반적인 청소가 불가능한 곳을 청소하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키는 특수청소서비스"라는 하드웍스의 슬로건으로 알 수 있듯이 김완 작가에게 청소란 흐트러진 삶의 존엄성을 바로 세우는 의미입니다.

"당신을 '킵고잉'하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그는 삶의 의욕을 잃어 집을 방치하거나 고독사한 이들의 집을 청소하며 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죽은 자의 집'에서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생의 의지를 전하는 김완 작가의 에쎄이를 준비했습니다. 생의 마지막, 그 이후에 남겨진 것들을 정리하는 김완 작가를 '킵고잉'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김완

특수청소서비스업체 ‘하드웍스’의 대표이자 작가로, 방치된 집을 청소하며 느낀 단상을 성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청소를 통해 존엄성이 훼손된 집에 온정을 불어넣고, 글을 통해 사람들의 지친 마음에 위로와 공감을 선사하는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방치된 집을 청소하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특수청소부로서 죽음과 삶에 대해 성찰한 내용을 담은 에세이 <죽은 자의 집 청소>가 있다.

고통은 바퀴벌레보다 참을성이 없다

글•사진 김완

“자기 인생에 대한 사용설명서 한 장 받지 못한 채 살아가며, 때론 하루의 삶조차 버거운 우리.”

죽은 자의 집에서 마주친 바퀴벌레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와중에도 과민한 장을 가진 자의 내면엔 급박한 소식이 어김없이 찾아오고, 그때는 별수 없이 화장실 변기 앞에 서서 방독면을 벗고 곧장 원피스 방호복을 끌어 내려야 한다. 죽은 이가 남긴 냄새와 산 자가 막 생산하는 냄새가 겨루면 어느 쪽이 더 지독할지 고민해 보는데 마침 달갑지 않은 바퀴벌레가 벽에 붙어있다. 먹고사는 데 쫓겨 삶에 대한 뾰족한 대책을 세운 적이 없으니 마침 등장한 저 흑갈색 존재에게서라도 교훈이 될 만한 점을 찾아본다면? 어지간해선 발견하기 어렵겠지만, 생존을 향한 저들의 강렬한 의지만은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기원 1억 년쯤 전 백악기에 출현해서 빙하기에도 살아남아 오늘도 여전히 세상의 변두리를 점령하는 우리 지구생명체의 대선배 바퀴벌레. 자연계 먹이사슬의 양지에서 요직을 맡은 적은 없지만, 오랫동안 음지의 주인공으로 납죽 엎드리고 숨죽이고, 평생 도망과 칩거의 반복을 마다치 않고 불법체류 노동자로 용케 살아간다. 다급할 때 시속 250킬로미터까지 속도를 끌어올리는 도주 능력뿐 아니라 어떤 유기물질도 양분으로 삼는 소화력 덕분에 비누를 먹고도 생존할 수 있다. 편견 없이 바라보면 이들이야말로 경이로운 인내력을 지닌 존재가 아닌지. 고독사와 자살, 강력 범죄가 일어난 곳, 죽은 고양이가 고요히 썩어가는 골목에서 일하는 ‘특수청소부’로서 바퀴벌레 퇴치로 골머리 앓는 신출내기 방역업자에게 팁 하나를 전하자면, 온갖 생활 쓰레기가 조선왕릉처럼 쌓인 집에서 구제 박멸에 성공하려면 먼저 천장부터 공략하는 편이 낫다. 추측건대 바퀴벌레는 일과 휴식 공간을 구분할 줄 아는 꽤 지적인 존재. 식량 갈취는 싱크대와 냉장고 주변 같은 집 안쪽에서 할지라도 주거는 천장 위쪽의 은폐된 공간, 그들만의 펜트하우스에서 하는 것 같다. 전기 분무기를 높이 들어 새하얀 강력 살충제 연무를 쏘아대노라면, 느슨하게 매달린 전등과 천장 틈에서 수많은 바퀴벌레가 일렬로 줄지어서 쏴아아 뛰쳐나온다. 바퀴벌레는 빛과 열기를 뿜는 전등을 아늑한 보일러 삼아서 천장 위쪽 은신처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와 크게 다를 바도 없는 존재.

인간의 지능과 마음은 득일까 독일까

‘도대체 나는 왜 살아야 하죠?’ ‘만사가 부질없는데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구태여 이 삶을 유지해야 하나요?’ 소셜미디어에서 잘 먹고, 잘 입고, 매일 신나게 나다니는 누군가를 들여다보며 자기 삶을 스스로 비교 평가하는 우리 사피엔스가 존재론적 의문과 고뇌에 휩싸이는 동안에도 바퀴벌레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험하고 누추한 곳이라도 기꺼이 기어간다. 희망이라는 뜻을 가진 러시아 바퀴벌레 ‘나데즈나’는 무인 캡슐을 타고 무중력 우주 공간에 도달해서도 임신에 성공한 바가 있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무수한 알집을 세상에 떨구는 천부적 모성애와 번식욕을 가진 생물. 그런 바퀴벌레에 비하면 인간 존재는 얼마나 유약한가. 일찍이 지구별의 주역을 꿰찬 우리에겐 지능과 마음이라는 강력한 생존 도구가 있지만, 때론 이것이 치명적인 ‘자가 위협 요인’이 된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의미’를 찾아 헤매는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애쓰고 떼쓰고 사랑을 갈구하며 살아간다. 마음이 평화로울 때는 매사가 긍정적이고 여유롭지만, 극단적인 불안에 사로잡히면 발붙이고 몸 누인 터전도 어느새 지옥으로 바뀌고, 동료와 가족조차 괴로운 관계가 된다. 마음에 고통이 치솟을 때 높은 지능을 이용하여 스스로 죽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 우리 영장류의 아이러니. 죽은 이의 집에 고스란히 남은 자살 도구를 볼 때마다 마음은 거센 태풍 속에 서 있는 것 같다. 죽음을 떠올릴 만큼 궁지에 처한 사람의 시야에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 자살에 관해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이 죽고 난 뒤의 모습까지 상상하게 마련인지, 세상의 하고많은 직업인 중에서 죽은 자의 집을 치우는 자가 있음을 발견하곤 말이나 한번 걸어보자는 심정에 이르나 보다. 청소와 글쓰기에 전념하는 자로서 상담까지 겸업하지 않지만,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자가 수시로 다가온다. 은연중에 구조 신호를 보낸다는 점을 모를 리 없으니 차마 외면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질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사랑

“산 사람의 쓰레기집은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일종의 구조 신호이다.”

서울에서 혼자 살며 직장에 다닌다는 삼십 대 여성으로부터 온 이메일. 「언제 어떻게 죽을까만 고민하다가 당신이 쓴 책을 읽고 처음으로 내가 죽고 난 뒤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어요. 만약 죽는다면 단 한 번의 시도로 고통 없이 끝내고 싶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전에는 발견되고 싶습니다. 죽어서까지 누구에게 민폐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마음이 여린 사람은 타인을 걱정하느라 쉽게 죽지도 못한다. 그녀는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해서 밤마다 후회하고, 죄책감이 마음을 압도하여 스스로 영영 행복해질 자격이 없다고 믿는다. 몇 차례 이메일이 오가자, 아무에게도 밝히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마음이 약간 홀가분하다고 했다. 하지만 깊은 우울감 속에 있을 때 감정의 표면에 살짝 덮인 먼지를 터는 것만으론 죽음의 유혹과 절망에서 쉽게 해방되지 못한다. 점차 연락이 뜸해져 걱정스럽던 어느 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녀가 다리를 다친 유기견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기 고통만을 호소하던 게시물은 반려동물에 대한 걱정과 건강 회복의 기대로 주제가 바뀌고, 다리가 나아져 함께 산책하러 나가는 빈도가 늘면서 점차 안도와 기쁨,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을 전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어릴 때부터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느꼈어요. 그래서인지 대학 시절은 물론이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귄 연인들과도 오래 만날 수가 없었어요. 이제 내가 돌봐야만 살아갈 수 있는 가족이 생겼는데, 이 아이가 오히려 저를 살리는 것 같아요.」 답신을 읽으며 사랑을 받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쪽보다 주려고 애쓰는 쪽이 행복의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녀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었던 죄책감,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고통은 뜻밖에도 유기견을 돌보며 사라졌다.

고통만큼 지조 없는 것이 있을까?

퇴근해도 잠이 오지 않고 빨리 죽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며 일요일 밤에 전화를 건 공무원은 상사가 승진하여 부서를 떠나자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기분도 덩달아 사라졌다고 한다. 문자메시지로 남 일인 듯 짐짓 꾸며서 자살 사건이 일어난 방 한 칸의 청소 비용을 물어본 중학생은 기숙사가 있는 다른 도시의 특성화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따돌림 문제에서 벗어나 평안한 마음을 돌려받았다.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은 괴로움은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완전히 종적을 감춘다. 어쩌면 내가 나서서 쫓아내지 않아도, 어느 날 때가 되면 알아서 제 갈 길을 가는 것 같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내 삶을 지켜보건대 근심이 나 이제 간다며 인사하고 떠나는 것을 본 적 없으니, 고통이란 얼마나 예의 없고 야박한가. 사춘기 시절의 이유도 잘 몰랐던 괴로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압박하던 갈등, 연인과 헤어지며 서글펐던 마음, 돈을 빌리고자 고개를 숙일 때 엄습한 수치심은 나를 떠나서 지금은 어느 복잡한 거리를 헤매며 새로운 인연을 찾고 있는가. 고통은 믿어봤자 언젠가 배신하고 또 다른 곳을 찾아서 떠나게 마련이니 속 깊은 정일랑 애초에 주지도 말자. 오늘도 막히는 퇴근길, 자동차로 끝도 없이 줄지은 도로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나. 차가 서로 꼬리를 물며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길도 어느 지점에선가 가속을 허락하고 우리는 마침내 각자의 집에 무사히 도착한다. 영원한 도로 정체가 없듯이 일생 내내 지속되는 고통 또한 없다. 속절없이 사라질 고통으로 인해 실의에 빠지는 것보다는 어느 날 화장실 벽에 붙어 내 근심을 엿보는 바퀴벌레의 참을성을 신뢰하는 편이 낫다.

”우리 저 바퀴벌레보다는 오래 살아남자. 지금 나를 붙드는 고통 따위는 때가 되면 머나먼 과거의 기억 속으로 영원히 떠날 것이다.”

[에디터의 한 마디]

‘하드웍스’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자신의 생명이 존귀하다는 자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삶에 더 큰 환희를 안겨준다.”라는 괴테의 말처럼 김완 님은 바퀴벌레와 쓰레기로 가득한 집에서도 생명이 존귀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삶의 환희를 발견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만큼 더러운 집도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완벽히 깔끔해지는 것처럼, 커다란 바위 같던 삶의 고통도 하루하루 일상을 가꿔나가다 보면 어느새 자취를 감출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떤 것이 이끌어주고 있나요? 여러분의 킵고잉을 어킵이 응원합니다!

2023 연말특집, 작가의 시선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색다른 레터, 어떠셨나요? 12월 말에는 임경선 작가님의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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