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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특집] 표류하는 인생에서 ‘기록’이란 나침반을 갖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철학을 통해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이들이죠. 연말을 맞아 이러한 특별한 시선을 가진 세 작가를 모셔 일상을 지속하게 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당신을 ‘킵고잉’하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첫 번째 작가, 무과수에게 삶을 킵고잉하게 하는 동력은 ‘기록’이었습니다. SNS를 활용해 무심코 남겼던 기록이 일상의 동력으로 이어졌다고 하는데요. 무과수의 기록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요? 인생을 표류하듯 살아가며 일상을 비일상처럼 모두 기록하는 작가, ‘무과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무과수撫果樹

가진 재능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쓰고 싶다는 뜻을 담아 '어루어만질 무(撫)', 열매를 맺는 나무인 '과수(果樹)'를 더해 만든 '무과수'라는 이름. 그 이름으로 수많은 기록을 해왔으며, SNS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했다. 또 그 기록이 바탕이 되어 여행작가, 마케터, 강연가, 리추얼 메이커 등 다양한 커리어를 쌓고 있으며 8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다.

씨앗을 뿌리며 사는 삶이란

글•사진 무과수
무엇을 강하게 원하지 않는 삶이 마치 도태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결과는 찰나지만 과정은 삶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팔로워 8만 명, 인플루언서, 작가, 강연가, 브랜드 마케터 등 현재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 목표를 세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쫓아 행동하고 성실히 기록하는 것이 전부였다.

첫 번째 씨앗, <여행 : 살아보는 여행>

애초부터 대기업을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기에 스펙을 위한 스펙을 쌓을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 취업하기 좋은 시기를 뒤로하고 계획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나겠다는 말에 모두가 휴학을 반대했지만 오랜 시간 오직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는 건 지금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보는 여행은 마치 일상처럼 시간이 흘러간다. 매일 아침 서울에서와 비슷하게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점심때쯤 느긋하게 집을 나선다. 동네에 있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한 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온다. 바쁜 여행 일정 대신 여유로운 일상이기에 숙소 호스트와 함께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함께 장을 보고 식사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타이밍 좋게 그들의 친구와도 친해져 현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 이야기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무과수의 여행 기록은 다분히 일상적이다. 기념품이나 관광지가 아닌 ‘여행지에서의 삶’을 기록하여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깊게 상상하고 느껴보게 된다.

두 번째 씨앗, <집 :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보는 시선>

서울로 상경해서 얻었던 첫 번째 집은 얼마 없는 보증금으로 겨우 구한 반지하에 있는 원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이나 주거에 대해 특별히 남다른 관심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사건의 발단은 여느 사회초년생과 다름없이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나날을 보내고 있던 때, 장마로 인해 집 천장에서 물이 새면서부터였다.
가장 아늑해야 하는 공간이 퀴퀴한 냄새로 뒤덮였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부터 주거에 대한 의문과 질문이 시작됐다. 기본적인 역할조차 해내지 못하는 공간을 집이라 불러야 하는 이 슬픈 현실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궁금해졌다. 어쩔 수 없이 때가 되면 곳곳의 집으로 옮겨 다녀야 하는 이 현실을 부정하고 슬퍼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럼으로써 경험할 수 있는 이점을 찾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나에게 꼭 맞는 집'을 찾는 여정이 시작됐다.
인생은 이벤트가 아니기에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보는 시선이 중요하다. 집을 기반으로 한 일상을 기록하면서 쉽게 무뎌지고 지나칠 수 있는 순간을 더 찬찬히 곱씹게 됐고, 그 덕분에 나의 삶을 더 사랑하게 됐다.
집의 기록은 어떻게 보면 취향의 기록이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인 집에 새롭게 들어오게 된 물건이 ‘나에게 맞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세 번째 씨앗, <음식 : 몸과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시간>

‘암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날 오른쪽 턱이 부어올라도 전혀 심각성을 못 느끼고 어슬렁어슬렁 뒤늦게 병원을 찾은 내가 의사로부터 들었던 말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암이 아닌 염증이었지만 그날 이후로 내 삶은 180도 달라졌다. ‘다행이다’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원인을 알고 싶었고, 증상과 관련된 책과 영상을 찾아 읽으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매일 먹는 끼니를 기록함으로써 매일의 나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진다. 어떤 음식을 골랐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또한 건강을 크게 잃고 난 이후부터는 ‘음식'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나에게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챙기는 시간을 마련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곧 나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투박하지만 맛있어 보이는 사진. 읽기만 해도 맛이 궁금해지는 세밀한 글. 단순히 먹은 음식의 기록이 아닌 건강을 챙기고 자신을 위로하는 기록이다.

무과수의 열매 : 기록

기록이라고 해서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나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과 감정을 붙잡아 글로 옮길 뿐이다. 중학교 때 일기를 쓰던 것을 시작으로 습관이 되어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노트, 핸드폰 메모장, SNS 등 그때그때 가장 편하게 쓸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해서 쓴다. 기록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잘 쓰려고 하지 않는 것과 미루지 않는 것. 기억이 생생할 때 기록을 해야 섬세한 글을 쓸 수 있다.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해 함께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SNS에 업로드를 하게 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볼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 10년이 됐지만 여전히 신기하다. 처음에는 그저 나를 위해서였는데, 점점 나의 기록을 통해 좋은 영향과 변화를 겪은 사람들이 늘어나서 감사한 마음으로 기록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강하게 원하지 않는 삶이
마치 도태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떤 결과를 원하냐 보다
어떤 과정 속에 있냐가 더 중요하다.
결과는 찰나지만,
과정은 삶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무과수 인스타그램 #무과수의생각

과정에 집중한다는 것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 보다는 경험의 과정에 집중하고, 기록을 통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자 감사하게도 결과를 얻게 되었다. 목표가 없었기에 실패라는 개념이 없었고, 그저 한 발짝 한 발짝 내 속도대로 나아갈 뿐이었다.
최종 꿈은 더 많은 팔로워를 얻는 것도, 더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와 닮은 집에서 건강한 한 끼를 챙겨 먹고, 계속해서 좋아하는 일을 곁에 두고 나 그리고 세상에 이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혹시나 더 이상 스스로 진정 원하지 않는 목표와 성공에 짓눌려 자책하고 있다면, 이렇게 작고 소박한 꿈을 귀하게 여기며 매일을 텃밭을 가꾸듯 살아가는 인생도 꽤 괜찮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길 바라며.

[에디터의 한 마디]

무과수님은 이러한 기록이 이끌어주는 삶을 통해 다양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현재 무과수님은 라이프스타일 분야 자문가로서 강의, 컨설팅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기록을 책으로 묶은 《무과수의 기록》 시리즈, 《안녕한, 가》, 《집다운 집》, 《요즘 사는 맛》 등 다양한 서적을 집필한 작가예요. 무과수님은 그저 꾸준히 해온 기록이 새로운 선택지를 열어줬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여러분의 삶은 어떤 것이 이끌어주고 있나요? 무엇이 되었든 여러분의 킵고잉을 어킵이 응원합니다!

2023 연말특집, 작가의 시선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색다른 레터, 어떠셨나요? 12월에는 또 다른 작가 두 분의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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