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속에 숨긴 폭력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어? 우리 엄마한테, 팀장님한테 맨날 듣는 말인데?’ 싶은가요? 텍스트로만 봐도 마음이 바로 불편해지는 이 말•••. 가스라이팅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에요. 언젠가부터 가스라이팅이라는 개념이 자주 언급되면서 ‘정신적, 감정적 학대’에 관한 의식이 자라고 있지만, 사실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나와 어떤 관계인지,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어떤 감정인지에 따라 인지하지 못하게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가스라이팅은 사람의 마음에 서서히 스며들며 결국 마음 근육을 약화시키고 말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나면 늘 자신감을 잃는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다.’ 같은 감정이 든다면 꼭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잠시 정차해 나를 살펴야 해요.
가스라이팅 (gaslighting) = 가스등 효과? 정확히 무슨 뜻이지?
먼저 ‘가스라이팅’의 사전적 정의는 ‘상대방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그 사람이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을 느끼고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에요.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상대가 움직이도록 ‘조종’하는 거죠. ‘가스라이팅’은 최근 들어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사실 이 개념은 80년도 더 전에 등장했어요. 1938년 연극 ‘가스등’(1938년 패트릭 해밀턴 작)에서 말이죠.
연극 ‘가스등’(1938년 패트릭 해밀턴 작) : 남편이 일하러 간 밤, 갑자기 침실의 가스등이 어두워진다. 가스등을 여러 개 켜면 집에 있는 모든 가스등이 함께 어두워지기 때문에 아내 ‘폴라’는 하인에게 누가 다른 곳에 불을 켰냐 묻지만, 아무도 불을 켜지 않았다고 한다. 자꾸만 침실 안 물건의 위치가 바뀌거나 없어지는데, 남편과 하인들은 이 일 역시 폴라가 해놓고 기억을 못 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폴라는 자신이 정말 미쳐간다고 생각하며 판단력을 잃어간다. 사실 남편은 아내 폴라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했고, 온갖 거짓말과 속임수로 폴라를 몰아가면서, 매일 밤 폴라 몰래 침실 위 다락에 가스등을 켜고 들어가 보석들을 찾고 있었다는 이야기.
연극 ‘가스등’에서 폴라가 겪은 일처럼, 가스라이팅은 상대가 서서히 자신을 잃게 만드는 감정적인 학대 행위에요. 신체에 가학 행위를 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닌 거죠. 가스라이팅은 마음에 멍이 들게 하고, 멍이 옅어질 새 없이 멍든 곳을 계속해서 타격하면서 결국 마음 근육을 파열시키고 말아요.
가스라이팅, 어떻게 알아차릴까?
혹시 이런 불편감을 느낀 적 있나요?
1.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나면 무기력해지고 자신감이 사라진다.
2.
누군가를 만난 후에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졌으며 내가 잘하고 있는지 그 사람에게 계속 확인받으려 한다.
3.
누군가와의 갈등 후 ‘내가 무능한가? 내가 너무 예민한가?’하는 생각이 항상 든다.
4.
일이 잘못되면 다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고, 사람들에게 자꾸만 변명을 하거나 사과를 한다.
‘나 가스라이팅 잘 당하는 것 같아. 혹시 내게 문제가 있는 걸까?’ 가스라이팅은 언제 잘 일어날까?
친밀한 관계 (가족, 연인, 친구)
가스라이팅의 가장 명확한 특징은 ‘친밀한 관계, 애정을 동반한 관계’에서 일어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잘 인식하지 못할 수 있어요. ‘살짝 기분 나쁘긴 한데.. 나 잘되라고 하는 말이겠지.’,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한 것 같아.’ 하면서요.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같이 자식이 부모의 기대에 못 미쳤을 때 부모가 하는 말도, 자식에게 죄책감을 부여한다면 그 또한 가스라이팅의 일종이에요.
수평적이지 않은 관계 (직장 상사)
사실 한국 사회에선 가스라이팅이 더 잘 일어날 수 있어요. 개인화, 수평 문화를 지향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엔 ‘정’을 미덕이라 여기고 ‘수직 문화’를 유지하려 하는 사회 문화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수직 문화가 이어지는 조직이라면 가스라이팅은 더욱 빈번히 일어날 수 있죠.
한쪽이 보호자 역할을 하는 관계
위의 두 경우 모두 공통적으로 한쪽이 관계상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부모-자식, 사수-부사수, 연인 관계), 가스라이팅이 더 잘 일어날 수 있어요. 아무래도 어떤 일에 대한 결정을 주로 하게 되는 쪽에 심리적으로 의지하게 되니까요.
‘그냥 조언일 수 있잖아.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가스라이팅과 조언의 차이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이 본인의 생각대로 움직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돼요. 그 욕구 자체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존중 없이 본인이 생각한 방향대로 와주기만을 바라죠. 만약 누군가 내게 “너 지금 그럴 때 아냐. 내가 도와줄게. 이거 같이 해보자.”라고 하더라도, 그가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나의 생각과 고민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고 묻지 않는다면 그는 그저 자신의 목적에만 집중한 사람일 수 있어요.
스포츠에서 승패를 가르는 요인은 ‘상대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들의 심리
“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데, 그 사람들을 이해까지 해야 한다고?”라고 한다면, 그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순간이 나를 지키는 일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떤 잔혹한 범죄자 앞에서도 감정에 동요 없이 냉정한 범죄심리학자처럼요.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파악하는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중심과 판단력을 지킬 수 있는 전문가들 역시 이런 과정을 거친 덕분이니까요.
“그거 내가 해봤는데 잘 안될걸? 어차피 안 될 거야.”
무기력 형
자신의 무기력함을 들키기 싫은 상태예요. 이런 경우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다른 시도를 할 수 없도록 무기력하게 만들어요. 특히 조직 생활에서 많이 일어날 수 있어요. 조직 생활에선 꾸준히 성과를 내고 인정받아야 하지만, 자신은 노력할 기력이 없으니 주변 동료 혹은 후배들도 성과를 낼 수 없도록 부정적인 암시를 계속하며 견제하는 거죠.
“나니까 너한테 이런 말 해 주는 거지.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
불안감을 숨기는 방어기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초점은 모두 자기 자신에 있어요. ‘나니까’, ‘나밖에’ 같은 말을 어두에 꼭 붙이죠. 이런 경우 상대가 자신을 떠날까 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 수 있어요. ‘나의 존재가 너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계속 각인시키는 거예요.
“네가 잘못 기억하는 거야.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자기애적 유형
자신의 자아, 능력에 과하게 가치를 부여하며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자기애적 유형이에요. 이 경우 자신이 잘못한 부분이더라도, 타인이 그 부분을 언급하는 순간, 그 자체를 자신에 대한 부정과 손상으로 느껴요.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특정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을 하는 이유와 목적을 알았다면, 이젠 그로부터 나를 지키는 힘을 미리 길러두면 좋겠죠. 모든 인간관계는 연관된 사람 모두가 기여하는 일이기 때문에 관계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면 서로 노력해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정신적 폭력을 하는 사람은 바뀌기 힘들다는 거예요.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그들과 직면하는 것보단, 일단 나의 내면을 건강하게 돌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해요.
나의 장점을 알아봐 주는 사람 만나기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결국 자신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또, 상대적으로 비교 판단할 수 있게 되죠. ‘누구누구는 늘 나의 장점을 찾아주는데, 왜 자꾸 저 사람은 내 부족한 점만 얘기하지?’ 하고요. 일단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는 거죠.
자기확신 가지기
가스라이팅은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지쳐있을 때(피해자) + 상대의 자기애적 인격(가해자)이 만난 상태에 가장 잘 점화되고, 불씨가 빠르게 커져요. 심리적으로 지친 상태라면 타인 혹은 어떤 행동에 과도하게 의지하게 될 수 있거든요. 그럴 때일수록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내 일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해요.
타인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X. 가끔은 의심하기
사람을 믿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나의 일에 너무 관여하려 하거나 ‘너밖에, 나밖에’ 처럼 내가 느끼는 친밀도에 비해 너무도 과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 그렇지만 나의 고민과 상황에는 그만큼 관심은 없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경계해보는 거예요.
가스라이팅은 누구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 수 있어요. 만약 친밀한 누군가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해서 절대 자책하지는 말아요. 잠시 멈춰서서 나의 내면을 돌보다 보면 이젠 더 이상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될 거예요.
나를 연소시키는 가스라이팅 3줄 요약 zip.
1.
누군가와의 대화 후 자꾸만 ‘무기력해진다, 자신감을 잃는다’한다면 가스라이팅의 신호
2.
가스라이팅은 마음에 서서히 스며들며 결국 자기 확신과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정신적 학대 행위
3.
가스라이팅에 영향받지 않는 힘은 나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 나의 장점을 알아보고 사람들 틈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나의 내면을 건강하게 돌보기.
*의학적 내용은 정신과 의사 문요한님의 자문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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