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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말 없는 향기가 주는 묵묵한 위로” 향기작가 ‘한서형’

한서형 작가의 생활 공간인 ‘존경과 행복의 집’에 발을 내딛자, 향긋한 허브 향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황홀한 기분도 잠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문구가 눈에 띕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던 저에게 향기는 하나뿐인 친구 같은 존재로 다가왔어요.”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 마음이 힘들었던 시절, 한서형님이 매일 거울을 보며 10번씩 외친 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외롭게 자라 온 서형님에게 향기라는 ‘친구’가 손을 내밀기 전까지, 그의 인생은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행복’의 정의에 대해 늘 머릿속에 물음표를 가지고 있던 서형님의 얼굴에 마침내 미소를 머금게 한 향기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요?
“내가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고 사는 삶이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국내 1호 향기작가. 당신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한서형이고요. 천연 재료를 이용해 향기를 만드는 사람이자, 그 향기로 누군가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이에요.

원래부터 향에 관심이 많았나요?

어렸을 때부터 향에 진심이었어요. 우리가 향이라고 하면 향수나 인공 향료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사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다 향이에요. 저는 학창 시절 버스에서 내려서도 3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할 정도로 멀었어요. 그 거리를 걸을 때마다 늘 자연의 향기가 제 곁을 맴돌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죠. ‘아, 자연의 향이 나를 수호천사처럼 지켜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물씬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천연 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향기작가라는 명칭이 생소해요. 조향사가 아닌 작가라는 명칭을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도 향을 만드는 직업이긴 하지만, 조향사라는 말은 스스로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조향사가 기술을 이용해 향합 베이스로 향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저는 영감과 스토리로 향을 만드는 사람이거든요. 예를 들어, 남들에게 라벤더 향을 설명할 때, 사람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의 향이라고 말하죠. 한 가지 향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스토리텔링을 하며 향을 만드는 것이 제 방식이에요. 확실히 조향사보다 작가가 더 어울리지 않나요? (웃음)
한서형님이 작업한 향기를 입힌 달항아리. 도자기는 깨지기도 쉽고, 향도 약하기 때문에 나무로 된 형태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향을 만드는 작업을 이어오다가, 작품에 향을 입히기 시작한 언제부터였나요?

처음 그런 생각이 든 건, 2015년쯤인데요. 당시 호림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던 ‘달항아리’라는 작품을 본 뒤였어요. 신기하게도 조명 아래의 달항아리에서 향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이 달항아리도 향기로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처음에는 도자기 위에 향을 입히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많은 위험 요소가 뒤따르더라고요. 고민 끝에 나무로 모양을 깎아 향을 입히기로 했어요.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개념에, 많이들 신기해했죠. (웃음) 지금은 사람들이 향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막대, 패브릭, 책 등의 다양한 형태에도 향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답니다.

천연 향은 인공 향료보다 발향과 지속력에서 약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천연 재료로 만든 향만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인공 향과 천연 향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제가 천연 향만 고집하는 이유는 에너지 때문이에요. 석유에서 추출한 향과 살아있는 식물에서 추출한 향이 정말 같을까 생각해보면 되는데요. 음식에 비유하자면, 누군가 직접 길러서 재배한 음식을 먹을 때와 인공 조미료가 가미된 음식을 먹을 때 배가 부른 건 똑같지만, 느껴지는 기운 자체가 다르잖아요. 비슷한 이유죠. (웃음)
”제가 만드는 향은 제 손끝에서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좀 더 기운이 좋은 향을 만들기 위해 명상이나 요가를 배우기도 하죠. 나라는 도구 자체가 좋은 상태여야 한다고 보는 거죠.”

말 한마디 한마디가 깊은 울림을 주는데요. 심리와 관련된 분야도 공부한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

성인이 되기 전까지 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홀로 사색에 잠길 때가 많았어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나 자신을 돌보는 일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어른이 되니 그 관심이 자연스레 심리 영역까지 확장됐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헌책방에서 <행복연습>이라는 책을 한 권 발견했는데요. 인생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어요. 그 책을 읽고 나서부터 ‘행복이란 게 뭘까?’ ‘나는 어떨 때 행복 한거지?’라는 질문들을 저 자신에게 강하게 던졌던 것 같아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접하게 되었고, 긍정 학교라는 곳을 다니며, 긍정 심리와 관련된 코칭 공부까지 하게 되었죠.
”남들에게 향을 설명하기 위해선, 내가 이 향을 정확하게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향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코칭 공부까지 수료했음에도 그와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지 않고, ‘향기로운 세계’에 전문적으로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요?

결혼 후, 가평에 집을 짓고 살게 되면서 긍정 심리학 강의 같은 일을 새로운 업으로 삼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우연히 한 캔들 공방을 방문하게 됐죠. 천연 향을 쓰는 공방이었는데, 향이 무척이나 좋아서 가라앉았던 기분이 확 전환되는 걸 느꼈어요. 이 향이라는 존재를 긍정 심리와 연결 지을 수 있다면, 더욱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향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러고 보니, 제가 향기를 만나게 된 근본적인 계기는 긍정 심리학 덕분이라 할 수 있겠네요. (웃음)

다르게 말하면, 향이 지친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나요?

그렇죠. 향은 우리 대뇌변연계와 연결이 되기 때문에 사람의 기억과 밀접하게 맞닿아있어요. 어떤 좋은 순간을 경험했을 때, 그 순간의 향이 매개체가 되어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는 거죠. 다시 말해, 최대한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면서 향을 만들어가면, 이 향만 맡아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에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물론, 일상을 환기할 수 있는 도구로 향기만 한 것이 또 있을까요?

“제가 화상을 입고 심적으로 힘들었을 때, 사람들이 저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된 적이 있었어요. 그때 향기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향기는 말이 없거든요. 제 옆에 말없이 묵묵히 있어 주는 게 더 큰 위로가 되었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지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병실에 향을 놔뒀는데, 두 달 가량 있으니, 간호사분들도 향으로 위로 받기 위해 들렀다 가더라고요. 제 방을 꽃방이라 불렀대요. (웃음)”

마음이 힘들었을 향기를 통해 위로받은 경험이 있나요?

몇 년 전, 작업을 하다 양쪽 팔다리에 큰 화상을 입었던 적이 있어요. 두 달 정도를 병원에서 보냈죠. 통증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고, 치료 과정도 너무 힘들어 그냥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해준 게 향기였죠. 마음이 힘들 때마다 제 병실에 있던 라벤더 향기를 코로 훅 들이마시고 나면 혼자가 아닌 느낌에 마음을 다잡게 되더라고요. 향기가 없었다면, 아마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마음이 지쳤다’. 같은 말이라도 각자가 겪는 상태는 제각각일 듯한데요. 일상이 힘들고 지쳤을 도움되는 향을 추천해주세요.

일단 쓸데없는 걱정으로 힘들 땐 레몬 향이 좋아요. 레몬은 정화, 소독에 많이 쓰이는 향인데 생각도 깨끗하게 정리해줘요. 가까운 마트에서 구입해 먹기만 해도 도움이 될뿐더러, 껍질을 짜서 향을 한 번 맡는 것도 일상에 도움이 될 거예요. 마음을 진정할 필요가 있다면, 라벤더를 쓰면 돼요. 흔히들 라벤더 향을 가슴 속 가장 큰 슬픔까지 치유할 수 있는 향이라 표현하곤 하는데요. 진정 효과도 있지만, 집중력을 높이는데도 제격이에요. 만약 에너지 방전으로 힘들다면, 식물 뿌리에서 추출한 베티베르 향을 추천해요. 하루가 너무 길어, 집에 돌아와 씻을 힘조차 없을 때 베티베르 향을 한 번 맡아보세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게 해줄지도 몰라요. (웃음) 마음이 우울할 때는 오렌지 향. 우리가 먹는 오렌지 껍질에서 추출한 향인데, 맡자마자 즉각적인 행복감을 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찾는 향이랍니다.
“라임 향은 시트러스 계열 중에서도 시원한 느낌이 강한 향이에요. 실제로 열을 식혀주는 작용을 하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도움이 돼요.”

향을 올바르게 즐기는 방법과 주의해야 점이 있다면요?

기본적으로 향을 맡을 때는 귀에서 코 아래로 포물선을 그리듯이 맡는 게 좋고요. 직접 코를 대고 향을 맡는 것보다 따뜻한 물 위에 향을 떨어트리고, 수증기로 향을 맡는 습식 흡입이나, 나무 막대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건식 흡입을 추천해요. 은은하게 향을 즐기는 방법이죠. 사실 한 가지 향을 오랫동안 쓰는 건 좋지 않아요. 우리 뇌는 모든 것에 금방 익숙해지기 때문에 점점 더 자극적인 걸 원하거든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향을 바꿔주세요.
따뜻한 물에 라벤더 오일 몇 방울을 떨어트려, 수증기로 향을 맡는 습식 흡입법. 라벤더 향을 머금은 수증기를 코로 깊게 들이마시면, 호흡기에도 좋고, 마음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서형님에게 향기는 어떤 존재인가요?

저에게 향기는 일상의 좋은 친구 같은 존재예요. 누구에게나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친구 있잖아요. 좋은 친구가 필요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웃음) 언제 어디서든 제 곁에서 묵묵한 위로를 주는 든든한 존재인 거죠.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 내가 나를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나에게 좋은 것만 찾게 돼요. 좋은 음식, 좋은 생각, 그리고 좋은 향기!”

a;keep 구독자에게 전해주고 싶은 한서형님의 한 마디는?

우리 일상이 늘 평온할 순 없잖아요? 흔들린 일상에 중심을 잡을 때, 향의 도움을 한번 받아보면 좋겠어요. 내가 좋아하는 향을 친구처럼 곁에 두면, 마음을 회복하는 데 반드시 긍정적인 작용을 하리라 생각해요. 오늘의 제 이야기가 향기롭길 바라며!
한서형님은, 천연 재료를 이용해 향을 만드는 국내 1호 향기작가로,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를 작품 위에 입히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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