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혹시 버킷리스트가 ‘책 만들기’인가요?

“매일 쓰는 일기도 얼마든지 책이 될 수 있어요”

나만의 책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살았지만, 현생에 지쳐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제 옆의 동료는 이 바쁜 하루를 쪼개서 독립출판까지 했다고 하네요. 어떻게 책을 쓰게 됐냐고 물었더니, 그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쉬웠다고 해요.
개성 강한 해방촌 골목 어귀에 위치한 스토리지북앤필름에는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도록 작은 불씨를 지피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요. 독립서점을 운영하며, 꾸준히 책을 세상에 내보내고 있는 강영규 님입니다. 책을 만드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며 꽤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깁니다.

강영규

‘지금 눈앞의 무엇이든 글감이 될 수 있어요’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독립출판을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저 사진이 좋아서 시작한 필름 카메라는 그를 사진집 작가로, 책 만드는 사람으로 이끌었다. 필명은 마이크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3년 스토리지북앤필름을 창업해 총 90여 권이 넘는 독립 서적을 출판했다. 예비 창작자들을 위한 독립출판 워크숍을 꾸준히 진행하며 독립출판계의 터줏대감으로 불리기도 한다.

평범한 직장인이 책방 주인이 되기까지

Q. 은행 일과 카메라 판매, 그러다가 독립 출판 일을 하기까지.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지금의 일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 은행원으로 일하면서는 평소 제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고 지냈어요. 유일한 취미가 필름 카메라 촬영이었어요. 별다른 보정 없이도 자연스러운 일상의 순간을 담을 수 있었거든요. 처음엔 소일거리처럼, 은행 일과 병행하며 필름 카메라 판매사업을 시작했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보그>에서 일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매거진에 제가 찍은 여행 사진이 실렸어요. 그때가 잡지처럼 종이 냄새가 나는 책에 내 사진을 담은 사진집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날이었죠. 2006년도 당시엔 그저 막연한 꿈으로만 갖고 있다가, 2012년도에 내 돈을 주고 스스로 책을 만들 수 있는 독립 출판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상상마당에서 하는 수업을 듣고 사진집을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책방까지 운영하게 되었던 거죠. 책을 만들고,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 이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이제 진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웃음)

Q. <TOGOFOTO>나 <WALK ZINE>처럼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담은 사진집을 출판하셨어요.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책으로 담아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나 습관이 있을까요?

‘기록’으로 ‘기억’하는 습관이요. 기록이라는 게 대단한 게 아니에요. 사진을 좋아하면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고, 그림을 좋아하면 그림으로 기록할 수 있죠. 우리는 항상 똑같은 하루를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생각해 보면 매일 똑같은 하루는 없어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기록을 해두고 기억하는 습관을 가진다면, 내가 하루하루를 제법 다르게 살아왔다는 것을 느낄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책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상당히 많은 도움이 돼요.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이 담긴 사진집 (좌), 여행지의 풍경을 주제별로 기록한 엽서 책 (우)

Q. 사소한 기록들이 쌓이다 보면, 그 자체가 나만의 스토리가 될 수 있겠군요.

그럼요. 저는 사람들이 책을 만든다는 행위를 가볍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보통 사진집을 떠올리면 고퀄리티의 하드 커버에 두껍고 무거운 책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저는 사진이란 것도 가볍게 소비가 되고, 누구나 사진집을 만들어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길 바랐어요. 모든 사진집이 두꺼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독자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면, 저처럼 중철제본으로 된 44페이지의 가벼운 사진집을 낼 수도 있는 거죠. (웃음)
“‘이런 사진집이면 평범한 나도 할 수 있겠다.’ 이게 제 책의 핵심이에요.”

기록이 책이 되려면, ‘뼈대’가 필요해요.

Q. 독립출판물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나요?

책 만드는 일은 보기보다 굉장히 단순한 과정의 연속이에요. 어떤 책이든지 뼈대를 세우는 작업이 우선인데요. 그 단계가 바로 기획이죠.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려면, 한 가지 주제를 명확하게 정하는 게 중요해요. 벤치에 앉은 사람들의 사진을 모을지, 걷는 사람들만 담을지 하는 고민을 하면서 주제를 좁혀나가면 돼요. 디자인 툴은 ‘인 디자인’을 사용하면 좋지만, 요새는 ‘파워포인트(PPT)’로도 만드는 분들도 있어요. 책을 만드는 데는 도구가 그다지 중요치 않다는 거죠. 제작 비용은 내지의 종류와 부수에 따라 달라질 거고요. 이런 방식으로 한 두 번만 익히면 금방 책을 만들 수 있답니다. 진짜예요. (웃음)
나 혼자 책 만들기 STEP 5
1.
기획하기 : 나만의 콘텐츠(소재)를 찾고, 기획안 작성하기 - 어떤 책을 만들지, 몇 부를 만들지, 왜 만들고 싶은지, 에세이? 사진집? 그림책? 어떤 프로그램을 이용할지 구체적으로 계획하기
2.
제작하기 : 콘텐츠 구성 및 제작하기 - 표지부터 마지막까지 책 구성(워드 파일)을 인 디자인 툴에 맞춰 글 배열하기
3.
디자인하기 : 책의 판형 및 디자인 컨셉 결정 - 표지 및 내지 디자인 작업, 재단 사이즈 확인, 책등 디자인
4.
인쇄하기 : 인쇄 방식 및 종이 선택 (※ 가제본 제작 후 검수 必!) - 인쇄소와 컨택하여 제작 부수, 종이 재질 및 견적 확정 후 인쇄
5.
유통하기 : 북페어 참가, 독립서점 입고, SNS 판매, 직접 판매 등 - 독립서점에 책을 입고하기 위해서는 동네서점 지도 등에서 독립책방 정보를 찾아 입고 메일을 보낸 후 회신이 오면, 수량 확인 후 입고할 수 있음
* 독립출판물은 유통 전 별도의 심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으며, 사업자등록증이 없더라도 판매할 수 있다.
참고 : 나만의 책 만들기 <스토리지북앤필름 마이크, 김현경>
혼자서 만들기 어렵다면, 함께 해볼까요?
책 만드는 첫걸음을 함께 <club_storage> (클릭!)
스토리지북앤필름의 워크숍을 공유하는 계정
4주 동안 나만의 책 만들기, 하루 독립출판, 매일 네 문장 소설 쓰기 등 프로그램 운영
해방촌점, 로터리점에서 수시로 모임 진행 중

Q. 뼈대를 세우는 작업이라고 말씀해 주신 기획, 즉 주제를 선정할 때 줄 수 있는 팁이 있다면요?

에세이라면 꼭 주제를 명확하게 잡지 않아도 괜찮아요. 대신 매일 기록하면서, 하루에 네 문장 이상 써보는 것을 권하고 있어요. 김종환 작가님의 경우, 카페에 가면 들어오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저 사람은 이 시간에 왜 이곳에 왔을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커피 한잔하러 왔겠지?’ 하고 그 인물에 대해 상상을 한다고 해요. 그런 사소한 호기심들이 글의 영감이 되는 거죠. 상상하는 습관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 그 문장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이는 기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Q. 연령에 제한 없이 누구나 독립출판이 가능한가요? 특히 기억에 남았던 작가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독립출판은 어린아이부터 노인분들까지. 연령, 성별에 제한 없이 누구나 할 수 있고, 실제로 굉장히 다양한 분들이 독립출판을 통해 함께 소통하고 있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은 <조금 더 쓰면 울어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를 쓴 재영 작가님인데요. 부모님이 80년대에 주고받은 연애편지로 만든 책이었어요. 아버지 환갑 선물을 위해 우리 책방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80년도의 문체가 생소하면서도 따뜻하고 아련한 느낌이 들어서 참 좋았어요.
아버지 환갑 선물을 위해 책방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들으며 기획했던 책. 부모님이 잊고 지냈던 청춘의 시간을 사랑하는 가족이 담아내다니, 이처럼 진솔하고 매력적인 기록물이 있을까? (출처 : 스토리지북앤필름)

당신은 이미 ‘소재’를 가지고 있어요.

Q. 일기나 SNS에 적었던 간단한 글들을 엮어 책으로 만들 수도 있나요?

얼마든지요. 저는 가능하면 글을 많이 다듬지는 말라고 권하는 편이에요. 당시 글을 썼던 자아와 수정하는 자아는 아예 다르거든요. 과거의 글을 자꾸 수정하다 보면, 아예 새로운 글로 수정될 가능성이 커요. SNS에 적었던 짧은 문장이더라도 읽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느끼기 때문에, 문장의 호흡이 꼭 길어야 할 필요도 없고요. 당시의 감정에 충실한 문장이라면, 오탈자와 띄어쓰기 정도만 수정하고 그 외의 부분은 건드릴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분량이 적을까 봐 고민이라면, 굳이 하지 않아도 돼요. 글을 어떻게 배치하고 넣느냐에 따라 책의 분량이 정해지니까요.

Q. 책 편집이 고민이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책을 쓴다’는 목적으로 책방에 가보세요. ‘책 만드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평범하던 책들도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가 그냥 책방에 갈 때와 내 책을 만들 결심을 한 다음, 방문하는 건 좀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책을 유심히 살펴보면 표지 디자인부터, 내지 구성까지 세심하게 챙겨야 할 부분들이 많이 보일 거예요. 나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진득하게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참고로, 독립출판 신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은 30%도 채 되지 않는데요. 얼마만큼 책에 안목을 쌓았느냐에 따라 나만의 책을 편집할 능력이 조금씩 업그레이드된답니다. 그럼에도 홀로 책을 완성하는 일은 수고롭고, 어렵게 느낄 수 있어요.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는 오랫동안 독립출판을 해오면서 얻은 노하우가 담긴 ‘나만의 책 만들기’를 제작하여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답니다.
모든 디자인에는 저마다의 매력이 살아 숨 쉰다. 책 제작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책방의 풍경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책들이 가득하다.

Q. 독립 출판물의 매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요?

‘삶의 다양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출판물’이라는 점? 그 누구의 필터링 없이 나온 창작물들이, 세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줘요. 기성 출판물들은 명확한 타겟층에, 판매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거예요. 책 자체가 아무리 기발해도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있죠. 그런 측면에서 독립 출판물은 기존의 틀을 깰 수 있는 가장 개성 있는 작품이에요.

Q. 나만의 이야기를 꺼내어 보고 싶은 분들에게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책 만드는 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렇게 되면 잡다한 걱정이 뒤따르게 되거든요. 혹시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너무 부끄러우면 필명을 쓰면 되죠. 책을 내지 않고서는 몰라요. 죽기 전에 꼭 한번 내보고 싶어서 시작한 작업이, 두 번째 작업으로,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책을 만들고 싶은 마음과 추진력이 있는데 방법을 모른다면, 스토리지북앤필름이 운영하는 워크숍을 찾아오세요. 여러분들의 마감일을 지킬 수 있게, 가차 없이 채찍질해 드리겠습니다. (웃음)
“영화에도 취향이 있듯이, 자기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이 있으면 덮으면 돼요. 책을 읽는 행위도 하나의 놀이로 바라보면 좋지 않을까요?”

에디터의 한 마디!

‘내 꿈은 나만의 책을 만드는 거야.’라고 하지만, 그 꿈을 실현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오늘부터 조금씩 내 일상을 기록하며 글감을 쌓아보세요. 혹시 몰라요. 나만의 이야기가 담뿍 담긴 신선한 책이 나올지도요.
지난 아티클 보러가기
어킵, 어떻게 생각하세요? 피드백을 남겨주시면 더 좋은 아티클 제작에 많은 힘이 됩니다!
피드백 남기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