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없는 일이란 세상에 없어요"
어른이 될수록 마음의 소리는 힘을 잃습니다. 막상 좋아하는 것을 해보자고 다짐해 봐도 선뜻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겸님은 달랐어요. 그는 사소한 모든 일들을 전부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죠. 지금 당장은 필요 없어 보이는 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는 걸 몸소 경험했거든요.
오늘은 일상에 지쳐 하고 싶은 일을 잠시 내려놓은 분들을 위해 인터뷰를 준비했어요. 멸종 동물을 복원하는 비타민 상상력의 대표, 김진겸님을 만나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을 들어 볼게요!
김진겸
"공룡덕후", 공룡 모형으로 가득한 작업실에서 만난 진겸님의 첫인상은 뚝심 있는 사람 그 자체였어요. 진겸님은 3D 모델링을 기초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비타민 상상력’이란 회사를 10여 년째 운영하고 있는데요. ‘박물관에 납품되는 동물(공룡 포함) 모형을 만드는 사람’. 진겸님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신의 일을 이렇게 정의 내렸습니다.
공룡덕후가 CEO가 되는 길
Q. 공룡을 좋아해서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문데요. 공룡을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어릴 적부터 공룡을 좋아했어요. 초등학생 때 공룡 사진을 스크랩해 책으로 만들 정도로 푹 빠져 있었죠. 보통 초등학생이 지나면 공룡에 대한 흥미가 식기 마련인데, 저는 아니었어요. 중고등학생 때까지도 허구한 날 교과서에 공룡을 그려댔어요. 책을 잃어버려도 낙서를 보고 친구들이 곧바로 책을 찾아줄 정도였다니까요. 제가 공룡덕후로 유명했거든요.(웃음) 제 관심은 온통 '공룡을 그리는 것'이었어요. 그러다 입시 전 우연히 ‘*ZBrush’라는 3D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는데요. 3D 모델링을 통해 공룡들을 더욱 정교하게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독학하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이 지금의 ‘비타민 상상력’을 만든 것 같아요.
* ZBrush(지브러시): Pixologic 사에서 개발한 3D CG 소프트웨어 2.5D/3D용 그래픽 프로그램.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진겸님은 사진을 직접 오리고 붙여 자신만의 공룡 책을 만들곤 했어요.
Q. 대학을 졸업하고 만든 '비타민 상상력', 그 과정이 어땠는지 알고 싶어요.
대학 시절, 3D 모델링 창업 동아리를 가입했어요. 거기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창업까지 도전하게 됐죠. 창업 후 처음 했던 건, 공룡 책을 만드는 거였어요. 스토리부터 이미지까지 손수 만들었던 책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무작정 ‘유아 교육전’에 참가했어요. 다행히도 그곳에서 한 출판사를 알게 돼 공룡 책을 발간하게 됐어요. 비타민 상상력을 창업하고 처음 번 돈이었죠.
그 뒤로 비타민 상상력은 계속 성장해 왔어요. 박물관에 실제 공룡 뼈 구조를 바탕으로 3D 모형을 제작해 납품했죠. 해외에서 요청이 와 피규어를 제작했던 적도 있어요. 지금은 3D 모델링을 활용해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려고 도전하고 있어요. 3D 모델링을 예술 쪽과 접목하는 시도를 하려고 해요. 예술가들과 협업하거나 동료의 개인전을 지원하기도 하죠.
'비타민 상상력'을 창업한 지도 거의 1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요. 대학 시절 동아리에 들어갔던 것을 시작으로 여기까지 왔네요.
‘하고 싶은 일’을 위한 ‘하기 싫은 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 가지 하려면, 싫어하는 일을 아홉 가지 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돈을 받으면서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달콤하지 않았어요. 진겸님도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이 있었거든요.
Q. ‘덕업일치’를 이룬 뒤엔 모든 것이 편해졌나요. 좋아하는 것이 생업에 녹아들었을 때 겪게 되는 현실은 어떤가요.
매일이 핑크빛 같지는 않아요. 좋아하는 것을 한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친구들한테도 장난 반으로 ‘너흰 일어나면 사장님 집 방향으로 절 한 번씩 해!'라고 말해요.(웃음)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고들 하잖아요. 그 말이 진짜거든요. 현실에선 하고 싶은 일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가 더 많아요. 종종 벌레나 곤충 같은 모델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도 오죠. 저도 모르는 분야다 보니 처음부터 공부해야 해요. 만들면서도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란 자괴감에 빠지곤 하죠. 그래도 일을 잘 해결하고 고객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이 두 배가 돼요.
Q. 마음이 흔들릴 때 하는 생각이나 노력이 있었나요.
‘이 일도 다 과정이다'라고 생각해요. 회사가 성장해야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생기니까요. 3D 모델링이라는 분야 안에서는 어떤 일이든 의미 있는 일이 돼요. 자괴감에 빠질 겨를이 없어요. 계속 단순해지려고 노력하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의문이나 사족을 붙이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사족이 '포기할 구실'이 돼요. 공룡이 아닌 것을 모델링 하는 것도 다 과정이에요. 안 하던 것도 해봐야 성장할 수 있는 거거든요. ‘모든 것이 과정이다.’ 그 단순한 전제만 상기시키면 없던 의미가 생겨요.
진겸님이 ZBrush를 통해 만든 공룡 모형들을 소개합니다.
방향만 맞으면 직선이 아니어도 좋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너무 큰 목표를 잡고 달리면 힘에 부칠 때가 많아요. 만약 진겸님이 처음부터 CEO가 되길 꿈꿨다면, 목표점을 향하는 내내 성공과 실패에 연연했을 거예요. 어쩌면 작은 실패에도 크게 좌절해 꿈을 포기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진겸님은 자신이 정한 기준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크고 작은 일이든 일단 해보려고 노력했어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거닐었던 과정들이 모여 비타민 상상력에 도달한 거예요.
Q. 진겸님을 보면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인생을 별자리에 비유하는데요. 제가 했던 모든 과정들이 하나하나 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점을 차례로 연결하면, 그 끝엔 하나의 별자리가 완성되는 거죠. 직선으로 바로 가는 사람은 없어요. 점과 점이 연결되면서 새로운 그림이 탄생하죠. 어렸을 때 만들었던 공룡 책도, 학생 때 운영했던 블로그도, 커뮤니티 활동도 모두 허튼짓이 아니었어요.
저는 그냥 공룡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공룡을 만들려고 해요. 뼈, 근육, 구조, 비율 등 모든 부분이 학계에 근거한 아웃풋이길 지향하죠. 그러려면 공룡 박사, 교수 등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요. 다행히 어릴 적부터 활동했던 공룡 커뮤니티나 제 블로그를 운영하며 알게 된 다른 공룡 덕후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요. 그 덕후들이 커서 공룡 전문가가 된 분들이 많거든요. 현재 자문을 구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박사님들은 저와 최소 10년 이상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인데요. 어릴 적 공룡 커뮤니티에서 만나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지금 제 일에 핵심적인 도움을 주고 있어요.
제가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하지 않았다면 그분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저 역시 블로그를 시작할 당시엔 비타민 상상력과 같은 공룡 모델링 회사를 차리게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근데, 그런 일들이 하나하나 점이 되어 쌓이고 제 삶에 도움을 주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필요 없어 보이는 일도 해두면 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Q. ‘의미 있는 과정’을 만들어 가는 방법이 궁금해요.
‘덕’에서 끝나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향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게 명확해야 하고, 그게 정해지면 생각은 단순하게, 실행은 빨라야 해요. 본인의 스토리를 집중해서 돌이켜 보세요.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말이죠. 원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까지 현실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덕업일치를 할 수 있답니다. 그 지향점에 맞는다고 생각되면 모든 일들에 의미가 생겨요. 제가 해온 모든 것들이 지금의 저와 비타민 상상력을 만든 것처럼요.
“어떤 상황에서도 떳떳할 수 있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세요.”
Q. 곧 10년을 앞둔 비타민 상상력이에요. 어떤 회사로 키워가고 싶나요.
이 업계에서는 제가 1세대이기 때문에 제 뒤를 따라올 사람들만큼은 편하게 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고 싶어요. 동물 모형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싶은 회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에디터의 한 마디!
'비타민 상상력'이라는 이름도 창업 당시 긍정적인 단어라고 느껴지던 '비타민'과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그냥 합친 거라고 해요. 간결하지만 명확한 진겸님의 삶의 태도가 돋보이는 부분이에요. 꿈꿔온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막연히 고민하기보단, 진겸님처럼 자기 스토리를 되새기며 모든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중요해요. '덕질'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언젠가 그 일상이 여러분을 또 다른 곳으로 이끌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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