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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 감정의 중심을 잡아줄 때

“자기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시작되는 정신적 해방” 정신과 의사 ‘오진승’

망설일 것도 두려울 것도 없어요.
10여 년간 환자들의 불안함을 차분히 달래준 정신과 의사 오진승님을 만나 감정의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남과 비교할 것 없어요. 내가 힘들면 오는 곳이 정신과예요.”

특별할 것 없던 질문도 정성 들여 답변해 준 진승님. 그의 섬세한 대화 스킬은 큰 여운을 남겼습니다. 오랜 시간 참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는 환자들의 마음도 이랬을까요? 서서히 대화에 빠져드는 동안, 진승님은 줄곧 일관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것은 상대에게 지나친 기대도, 편견도 없는이 온전히 자기 자신과 상대에게만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신과에 가길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늘 강조하던 ‘자기 집중’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요. 어킵 구독자들을 위한 오늘의 이야기는 내면의 건강을 돌보는 정신과 의사 오진승님과 함께합니다.

10년 동안 수많은 환자를 만나셨을 텐데요. 정신과를 방문한 환자들은 무엇을 가장 걱정하나요?

이런 걸로 병원에 와도 되는지를 많이 물어봐요.(웃음)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엄살 부린다고 생각하면 어쩌지?’라고 고민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럴 때마다 저는 오히려 지금 이 시기에 왔기 때문에 수월하게 진료할 수 있는 거라고 안심시켜 드리곤 해요. 본인은 가볍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의사들이 봤을 때는 심각한 증상일 수 있기 때문에 고민하지 말라고 얘기해요.

그렇지만, 정신과는 다른 의학과에 비해 어떤 증상으로 방문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서요. 올바른 정신과 방문을 위한 팁이 있을까요?

정신과라고 해서 어려울 건 없어요. 가장 간단한 기준은 ‘자기 자신’이에요. 내가 힘들면 가는 곳이 정신과거든요. 남과 비교하기보다 이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을 비교해보는 거예요. 한 달 전에는 잠도 잘 자고 친구들 만나는 것도 즐거웠는데, 요즘 들어 불면증이 생기고, 밖에 나가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진다면 정신과를 방문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콧물만 나도 병원에 가는 친구가 있고, 2주 동안 열이 펄펄 끓어도 병원에 가지 않는 친구가 있는 것처럼 정신과도 일반 내과나 이비인후과처럼 부담 없이 편하게 생각해보면 쉬울 거예요.
“사람마다 역치의 기준은 모두 다르답니다.”

치료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간혹 정신과 방문 한 번으로 큰 희망을 품는 분들이 있어요. 물론, 병원에 오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하고 시작의 반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꾸준한 관리를 필요로 하는 치료가 대부분이라 지나친 환상은 치료에 방해가 될 수 있어요. 반대로, 치료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 역시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는데, 정신과에 대한 선입견을 지운다면 문제는 해결될 거예요.

스트레스를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고 말하잖아요. 스트레스는 무조건 없는 것이 좋은 건가요?

스트레스가 모든 질병의 중요한 요인인 건 확실해요. 오죽하면 스트레스성 두통, 스트레스성 위염이라고 칭하겠어요. 하지만, 제가 봤을 땐 스트레스를 없애기보다 스트레스의 면역력을 키우는 게 더욱 중요한 것 같아요. 진료실에 오는 환자분들만 봐도 같은 스트레스를 전보다 힘들게 받아들일 때 병원을 찾아요. 가족들은 매번 똑같은 잔소리를 했고, 회사 내 부장님도 매일 보는 부장님인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예요. 스트레스 자체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겠지만,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자신을 혼동하지 말고 구분할 줄 알아야 해요.
“내가 누군지 꾸준히 연구해야 해요.”

요즘 MZ 세대들은 정신과에 대해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진료를 할 때, MZ 세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도 있을까요.

MZ 세대들은 흔히 개성이 강하고 남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근데, 막상 진료실에서 마주해보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굉장히 민감해요. 저도 SNS를 하지만, MZ 세대처럼 활발하게 쓰고 있진 않거든요.(웃음) MZ세대 친구들은 SNS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 내지는 초조함 등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와 더불어 자존감도 많이 낮은 상태고요. 스스로 게으르다거나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말하곤 하는데, 의사 기준에서 볼 땐 전혀 문제가 될 정도가 아니거든요. 학교생활도, 직장 생활도 너무 잘하고 있는데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아서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아요.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MZ 세대들에게 어떤 해결 방안을 드리면 좋을까요?

우선, 자기감정에 솔직해지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요즘 MBTI가 유행인데, 나라는 사람은 MBTI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형보다 훨씬 복잡하거든요.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나를 눈여겨 보면 훨씬 수월해요. 혼자 있을 때의 나는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사람들과 있을 땐 비교적 확인하기가 쉽거든요.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연구와 공부를 이어가고, 다양한 사람과 경험을 쌓아 보길 권유합니다.

감정은 전염된다고 하잖아요. 정신과 의사라도 매번 환자들을 대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본인이힘들 때 극복하는 방법은 다를까요.

정신과에서 일 한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도, 컨디션에 따라 버거울 때가 있어요. 저도 고민이 있다거나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확실히 환자분들의 감정에 동요되는 경우가 있어서 특히 컨디션 회복에 유의해요. 퇴근 이후에는 병원이나 환자 생각을 되도록 안 하려고 노력하고,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일과 일상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해요. 흔히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말하잖아요. 저는 그게 업무 환경을 질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퇴근 후 겪는 일상적인 경험들이 환자분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된다는 진승님.

일반인들에게 적용해도 마찬가지겠죠?

맞아요. 힘들 땐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먼저예요. 건강한 몸(정신)에 건강한 정신(몸)이 깃든다는 말처럼요. 컨디션 회복을 위해선 잘 자고, 잘 먹고, 잘 운동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분들을 보면 그런 것들이 깨져있는 게 눈에 들어오거든요.

“추가로, 도움을 드리자면, 혼영, 혼술 등이 이제는 트렌드로 자리 잡았잖아요. 혼자 보내는 시간이 힐링을 줄 때도 있지만, 때론 고립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인지해야 해요. 고립감은 다양한 정신 질환의 표적이거든요.”

혼자가 익숙한 분들. 일상이 되어 버린 터라 미처 깨닫지 못하고 넘길 때도 있을 텐데요. 진승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립감에 빠지는 경우 우울증이나 조기 치매를 유발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감정이 나약해지면 인지 왜곡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일상 중 일부분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으로 채워보는 건 어떨까요.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분들은 인지 왜곡이 생길 수 있어요. 같은 말을 들어도 더욱 부정적으로 해석하죠.”

마지막으로 정신과를 어떤 곳으로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제가 자주 드는 비유가 있는데요. 집 앞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사가 불친절할 수도 있고, 머리를 이상하게 자를 수도 있잖아요. 그럼, 이번에는 망했지만, 다음번엔 다른 곳에 가보자고 생각하지 평생 혼자 머리를 자르려 하진 않아요. 그런 것처럼 정신과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방문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어딜 가더라도 정신과를 쉽게 찾을 수 있어요. 본인이 처음 간 정신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병원도 방문해보길 바라요. 우리나라만큼 정신과 전문의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없거든요. 우리가 그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요. 예약제 외에는 일반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편하게 찾아 주세요. 정신과 의사도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잡아먹거나 해치지 않아요.(웃음)
“정신과는 무서운 곳이 아니랍니다.”

a;keep 구독자에게 전해주고 싶은 오진승님의 한 마디는?

아 참, 정신과 약을 걱정하는 분들도 많은데, 이미 수십 년 동안 상용화되고 있는 약들이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 먹고 있는(혹은 먹을) 약들은 전 세계 식약처와 FDA에서 승인받은 약들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어도 됩니다. 환자분들이 우려하는 것 이상으로 의존성과 부작용에 주의하고 있어요. 약이 아니더라도 환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치료법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 방문 전 참고하세요!
오진승님은, 현재 정신과 의사로 근무 중이며, 2018년부터 '닥터프렌즈'라는 의학 전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오고 있다. 의사로서 친구에게 혹은 가족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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